헤어질 결심, 잔잔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그린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영화 올드보이(204), 박쥐(2009), 아가씨에 이어 네 번째로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신작 '헤어질 결심'의 첫 상영이 끝난 후 8분가량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환호를 보내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소감으로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길고 지루한 구식의 영화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서 웃음과 환호를 다시 받았다고 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그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었는데, 정말 꼭 맞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클래식 영화 '밀회'(1945)와 정훈희의 노래 '안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하나의 상징이 되었던 안개, 정훈희 & 송창식의 노래'안개'가 영화 '헤어질 결심'의 대표 ost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삽입곡 안개를 영화 앞부분에는 정훈희 버전으로, 엔딩 자막 때는 정훈희 송창식 버전으로 담았다고 합니다.
영화'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 작품 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로맨스 작품입니다.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갖게 하는 작품, 수사극이자 로맨스인 작품 '헤어질 결심'의 포인트는 바로 박해일과 탕웨이의 케미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서로 닮은 두 남녀 주인공이 주는 케미가 아주 매력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이 해준의 캐릭터를 깔끔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형사임에도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 해준의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서래라는 중국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에 힘들게 왔지만 남편이라고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쓰레기였고, 헤어질 결심을 계속해서 하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된 해준에게 마음을 주게 됩니다.
극 중에서 해준이 이러한 대사를 남깁니다. “어떤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어떤 슬픔은 잉크처럼 천천히 번지는 거야.” 영화 '헤어질 결심'을 표현하는 명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해준과 서래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주고받은 감정들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 있게 됩니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애정을 보여주는 영화, 근사하고 품격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준은 기도수의 추락사건으로 송서래를 취조하고 조사하면서 송서래가 아내와는 달리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이성이라는 걸 깨닫고 점점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해준은 남편의 사망 이후 그녀가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걸 알고 식사를 직접 차려주기도 하고, 그녀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신경 쓰며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송서래 또한 해준이 지나간 미해결 사건들로 인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걸 알고 사건에 관련된 사진들을 없애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숨소리를 맞춰 해준이 편한 잠에 빠지게 도와줍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게 되면서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결국 기도수의 추락사건은 자살로 결론이 나지만 이후 해준은 계속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해 송서래가 꾸민 알리바이 조작을 알아내게 되고, 그녀의 범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인 휴대폰까지 입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해준은 서래를 차마 체포하지 못하고 도리어 서래에게 휴대폰을 바닷속에 버려 증거를 없애라고 충고하면서 헤어집니다.
눈앞의 살인범을 모른척하고 증거까지 은닉하는 데 동참하게 되면서 해준은 형사로서의 자부심이 붕괴되었고, 때문에 해준은 서래와의 사랑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의 이러한 행동이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으면서 그녀 또한 멀어진 해준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13개월 뒤의 영화의 시간은 해준이 그동안 우울증에 걸려, 아내 직장 근처의 이포로 옮겨 왔고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해준은 권태의 늪에 더욱 빠지게 됩니다. 이때 부산에서 헤어진 송서래가 새로운 남편과 함께 이포로 이사를 오게 되고 해준과 서래는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되면서 아직도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또다시 서래의 남편 임호신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해준은 어쩔 수 없이 서래를 조사해야 했고, 끊어져버릴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그들이 형사와 피의자로 만나게 되면서 로맨스가 만들어집니다.
송서래는 해준과 헤어진 뒤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헤어질 결심으로 사기꾼인 임호신과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호신은 사기 피해자들의 독촉을 피하기 위해 서래와 함께 이포까지 도망 오게 되면서 해준 부부와 만나게 됩니다.
서래의 폰에 형사 해준이 과거 그녀의 범죄를 은닉하는 데 일조한 녹음파일을 발견하게 된 호신은 서래를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서래는 호신에게 당한 피해자의 아들 철성이 호신을 살해하도록 유도하고 녹음파일이 담긴 폰을 바다에 던져 위험을 제거합니다. 또 서래는 13개월 전 자신의 범죄의 증거가 담긴 폰을 다시 해준에게 건네주며 은폐한 사건을 다시 조사해서 무너진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다시 되찾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두 개의 폰은 두 사람이 범죄에 연관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후 서래는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바다의 물에 잠기도록 자살을 계획하고 해준은 그녀를 애타게 찾지만 서래를 찾지 못하게 되면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헤어질 결심을 한다는 건 참 애매모호하게 들립니다. 아직 헤어진건 아니지만 앞으로 헤어질 것이고, 헤어진 이후의 상황까지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건 영화에서 두 번 보입니다. 첫 번째 결심은 해준을 잊기 위한 헤어질 결심, 가질 수 없는 남자인 해준을 잊기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건 서래의 헤어질 결심입니다.
두 번째는 해준에게 끝없는 미결 사건으로 남기 위한 헤어질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준에게 증거가 있는 폰을 주고 본인은 바다에 구덩이를 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로 이 세상에서는 해준과 헤어질 그런 결심이었습니다. 신체적인 접촉이 크게 없어도 서로가 사랑하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던, 눈빛과 말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굉장히 특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영화였습니다.
▶▶▶ 밝은 분위기의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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